장미연 일러스트 작가
사람들과 그림으로
공감하며 소통하는 순간들
먼저, 작가님은 처음부터 캘리그라피 일러스트 작가로 시작하셨나요?
대학에서 목공예 전공을 했는데 저에게는 도면 도학이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시각디자인으로 전향하고 식품류 패키징 디자인 회사에 다녔어요. 패키징 디자인 작업에 그림이나 글씨가 필요한데 그때마다 서예 작가님들한테 글씨를 받으려니 비용이 예산에 맞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연습을 해볼게요.’라고 회사에 말씀드리고 사무실 한쪽에 먹을 가져다 놓고 서예를 배우면서 캘리그라피를 공부하게 됐어요. 그렇게 제가 작업한 로고나 글씨를 고객들이 좋아 해주셨어요. 그때 그림이나 글씨를 디자인에 활용하면서 재밌게 일했던 거 같아요.
그럼 디자이너로 회사 생활을 하시다가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디자인 회사를 다니면서 제가 그림 동호회 활동을 했는데 그 당시 전주시에서 저희 동호회에 한옥마을 아트마켓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제안이 왔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소소하게 그림으로 만든 상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은거예요. 나중에는 금요일 밤만 되면 주말에 아트마켓 나갈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한옥마을 아트마켓에 가면 젊은 예술가들 작품 구경하는 것도 좋았고 현금이 들어오니까 재밌더라구요. 그러던 중에 제가 디자인 회사에서 7년 정도 근무하다 보니 몸이 안좋아져서 그만두게 됐어요. 재택 하면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막상 집에서 작업하려니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작업실을 알아보던 중에, 아트마켓에서 만난 손님 한 분이 한옥마을에 비어있는 자기 사무실이 있다고 하셔서 들어가게 됐어요.
처음부터 캘리그라피 작업실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우선 디자인 작업하려고 컴퓨터 하나만 놓고 그동안 집에 쌓아놨던 그림들을 가져다 놓았더니 지나가던 한옥마을 관광객들이 들어와서 작품 가격을 물어보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처음엔 작품을 판매할 생각도 전혀 없었는데 하나, 둘 물어보시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내가 그린 그림이 판매가 되는구나 알게 됐죠. 그 뒤로는 디자인 작업보다 그림 작업이 더 많아지면서 전업 작가로 전향하게 됐어요.
장미연 작가의 ‘미연 아트숍’(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1-1)
작가님께 제가 첫 명함을 의뢰했을 때만 해도 한옥마을에 계셨는데, 지금 서학동 예술마을에 는 어떻게 입촌하게 되셨어요? 한옥마을 초창기 예술공방들이 많았을 때는 예술에 취향이 있는 방문객들이 많았는데 나중에는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 온 10대 방문객들이 늘어나고 단체 관광객이 우루루 다녀가기 시작하면서 한옥마을에 저렴한 중국산 상품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예술품에 대한 소비가 줄어들고 가치 인식도 낮아져서 공방 운영하기도 점점 힘들어졌죠. 그러다 결국 너무 힘들어져서 한옥마을 작업실을 정리하고 당분간 짐들을 옮겨 놓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 어느 날 서학동을 지나다가 지금 이 작업실을 우연히 발견한 덕분에 지금 작업실로 옮겨오게 됐어요. 사실 서학동은 제가 태어난 동네예요. 어릴 적에 서학동에서 아버지는 금은방을 하셨고 어머니는 의상실을 하셨는데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이 동네에서 살다가 이사 갔었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 놀던 동네라 익숙하기도 하고 서학동이 정감이 가요. 제가 먼저 서학동에 자리잡고 나서 한옥마을 작업실 맞은편에 있던 바느질 공방 삐나 쌤에게도 말해서 서학동으로 오시게 했어요. 한옥마을 작업실은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작업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는데 서학동으로 오고 나서부터는 작업에 집중하기가 더 좋아요.
작가님의 작품 중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의 그림이 자주 등장하는데 혹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한복을 보면 매력이 느껴지고 막 이렇게 울림이 느껴져요. 한번은 ‘내가 왜 한복에 끌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주제로 전시를 한 적도 있어요. 저는 좋아하지만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리는 게 좋아요. 누군가는 제가 직접 한복을 입으면 되지 않냐고 하시는데 왠지 내가 한복을 직접 입어버리면 한복의 매력이 떨어질 거 같은 거예요. 고양이도 그래요. 제가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는데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키우지는 못하거든요. 그래서 제 그림에 고양이도 자주 그리는 것 같아요. 정작 강아지를 키운 적은 있는데 그림으로 그려본 적은 없거든요.
그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작품을 남기셨을텐데 특히 기억에 남는 고객이나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한옥마을 작업실 시절, 기억에 남는 손님이 한 분 있어요. 어느 날 작업실에 오셨던 한 여자 손님이 제 (캘리 작업 할 때 쓰려고 좋은 문구들을 모아 놓은) 연습책을 보시더니 자기한테 판매하지 않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원래 판매용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거듭 부탁하셔서 어쩔 수 없이 팔았는데 며칠 지나고 후회했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죠. ‘죄송하지만 그 책을 다시 보내주실 수 있나요?’ 라고 말씀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흔쾌히 알겠다고 하시면서 다시 돌려주셨어요. 어쩌면 예술을 하시는 분이라 자기 작품에 대한 애틋함을 이해해주셨던 것 같아요. 제가 의뢰받았던 작품 중에서 가끔 잘 있는지 궁금한 그림들이 있어요. 제가 ‘문화스케치’(KBS방송)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 방송을 보시고 경기도 포천에 사시는 나이 지긋한 노부부께서 일부러 작업실을 찾아오신 적이 있어요. 제가 나무에 그림 그리는 영상을 보시고 새로 들어가서 살게 될 집에 걸어 둘 초상화를 꼭 저한테 맡기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엄청 고가의 좋은 나무를 직접 가구점에 재단까지 맡기셔서 보내주셨어요. 그때 보내드린 그림들은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잘 있는지 가끔 궁금해요. 그리고 또 하나, 첫 개인전을 경찰청 아트홀에서 했는데 전시 작품 중에 아프리카 나무 목재에 제가 좋아하는 잡동사니들과 그릇장을 그린 작품이 있었어요. 한 고객이 그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구매하셨는데 가끔 그 그림이 잘 있는지 궁금하고 다시 데려오고 싶기도 했어요. 제 작품들이 제 손을 떠나고 나면 마치 내 새끼를 시집보내는 기분이 들어요.
장미연 작가는 자신의 품에서 떠난 작품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동안의 작품들을 엽서로 만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림 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새로운 활동들이 있다면?
내년에는 이모티콘 출시를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유럽의 여성들이 한복 같은 한국적인 요소의 작품들을 좋아 해주셔서 온라인 쇼핑몰을 어서 만들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앞으로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유럽에도 저의 작품과 상품들을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구입이 부담스러운 작품 원화 대신에 저의 작품을 좋아 해주시는 분들을 위한 상품들을 개발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통해 작가님이 그림을 정말 사랑하신다는 걸 느꼈어요. 그동안 힘든 순간들도 있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이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약 제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 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힘이 되는 거 같아요.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그림인데 이게 뭐라고 제 그림 덕분에 마음이 따듯하고 행복해졌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정말 행복해요. 만약 그림을 혼자만 즐기는 작업이라면 너무 외로웠을 거예요. 그런데 제 작품을 공감해주시고 함께 소통할 수 있을 때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도 저는 그림을 통해 알지 못하던 누군가에게 소소하지만 선한 영향력을 주면서 즐겁게 오래오래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